교포신문 : 정원교의 중인환시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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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07월22일 00시00분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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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교의 중인환시 (51)
동명성왕 주몽
고구려를 건설한 동명성왕은 고씨 성을 가지고 있었고 이름을 주몽이라고 하였다.
 
고주몽이 고구려를 건설한 이야기는 김부식의 지은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 그리고 고려본기(高麗本紀)에 기록되어 있어 고구려가 건국되는 것이 꼭 전설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사실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이상한 것은 단군의 역사가 삼국사기와 유사 그리고 제왕운기에도 자세히 실려 있음에도 이를 신화로만 치부해 버리니 고구려의 동명성왕 고주몽의 이야기를 쓰면서도 전설로만 읽혀 질 까봐 걱정인 것이 한낮 기우이기를 바랄뿐이다.
 
고주몽이 고구려를 건설하는 과정은 이랬다.
 
부여의 왕이었던 <해부루>는 노년에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기에 나라 안의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면서 대를 이을 아들 하나를 점지해 줄 것을 빌고 다녔다.
 
어느 날인가 그날도 해부루왕이 명산대천을 찾아 기도하러 나섰던 길이었는데 타고가던 말이 곤연이라는 연못가에 이르러서는 큰 바위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크게 흔들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해부루왕이 부하들에게 그 큰 바위를 들쳐보라고 했더니 놀랍게도 그 바위 밑에는 노란 개구리처럼 생긴 어린 아이가 앉아 있는 게 아닌가.
 
그동안 명산대천을 찿아 다니면서 아들 하나만이라도 얻게 해달라고 빌고빌며 다닌 뒤의 일이라 해부루왕은 이 아이는 틀림없이 천신께서 나에게 내려준 선물이다 생각하고 궁중으로 데리고 갔다.
 
아들을 얻은 해부루왕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그동안에 자기와 같이 명산대천을 찿아 다니며 기원행사에 고생을 같이 해준 신하들에게 매일 잔치를 열어 그들의 노고를 위로해 줄 정도였다.
 
해부루왕은 아들의 이름을 지으면서 처음에 노란 개구리처럼 생긴 아이였다고 해서 <황금 개구리>라는 뜻으로 금와(金蛙)라는 이름으로 지어 주었다.
 
<아란불>이라는 재상이 해부루왕에게 수도를 옮길 것을 권하자 <아란불의 꿈>에서 본 곳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이름을 <동부여>라고 지었는데 이곳에는 이미 <해모수>라는 종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해부루왕이 사망하고 금와(金蛙)가 왕위를 계승한 후 사냥을 나섰다가 산중에서 미모의 처녀를 만나게 되었다.
 
처녀가 외딴 산중에 홀로 있는 이유를 물으니 처녀는 하백의 딸로 <유화>라고 하며 공원에 놀러 나왔다가 해모수라는 남자에게 겁탈 당한 것을 알게된 부모님이 집에서 쫓아 내서 이곳에 혼자 살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금와왕이 처녀를 어여삐 여겨 궁으로 데려와 보니 그녀가 움직이는 곳마다 그림자가 따라 다녔고 얼마후에는 유화에게 태기가 있어 아기를 낳았더니 아이가 아니라 둥근 알이었다.

금와왕은 사람이 알을 낳은 것이 상서롭지 못한 일이라며 알을 내다 버리라고 했으나 개나 돼지, 소나 말도 알을 피해 다니는지라 다시 그 알을 유화에게 돌려주었더니 얼마 후 알에서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어려서부터 활쏘기를 잘해 <주몽>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동부여말로 활 잘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금와왕에게는 이미 일곱 명의 자식이 있었는데 모두 주몽의 재능에 미치지 못하자 <주몽이 사람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면서 재주가 뛰어 나니 나중에 무슨 후환이라도 당할까봐 겁이 난다. 당장 없애 버리지 않으면 우리가 당할지도 모른다>며 살해할 것을 모의했다.
아들의 위험을 느낀 어머니 유화가 아들 주몽에게 더 넓은 곳으로 떠나 너의 뜻을 펼쳐보라며 <동부여>를 떠날 것을 권유하자 주몽는 뜻이 맞는 군졸을 데리고 즉시 길을 찿아 떠났다.
 
주몽이 지금의 압록강에 도착했을 때 떠있는 배는 없고 뒤에서는 형제의 군사들이 쫓아오고 있어 오도 가도 못하게 되자 물의 신에게 빌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수백 마리의 자라들이 강물에서 떠올라 물을 건널 수 있도록 다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
 
압록강을 무사히 건넌 주몽은 토지가 비옥한 <졸본천>에 새로 도읍을 정하고 나라이름을 고구려라 부르고 자기의 성을 고씨로 정했다. 기원전 37년 이 날이 바로 주몽이 동명성왕으로 고씨라고 부르며 서기 668년까지 약 700년간 지속되었던 고구려를 창건하는 순간이다. 이 때가 고주몽의 나이가 22세였고 중국 한나라 효원제인 건소 2년 때이다.
바위 밑에서 아이가 앉아 있었다거나 알에서 주몽이 태어 났다거나 수백 마리의 자라가 강물에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 들을 보면 정말 신화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지만 역사기록에 실려 있으니 아니 믿을 수도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필자는 오늘도 삼국유사에 실린 단군의 역사는 신화가 아니라 사실이며 우리나라가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한다면서 단군의 역사를 신화로만 보는 것은 개천절도 부정하는 일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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