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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07월22일 00시00분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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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 먹는 사람들
류 현옥
 
몇 년 전 고국에서 돌아올 때 고향 친구가 말린 쑥이 담긴 큰 종이봉지를 선물로 주었다. 고향에 다녀올 때마다 짐이 많아서 애를 먹는 판국에 받는 선물이기에 그다지 반갑지가 않았다. 친구는 부피가 좀 그렇지만 무게가 안 나가니까 가방 속에 쑤셔 넣으면 될 거라면서 지인의 한약방에서 외국에 보낼 거라고 특별히 부탁했다고 강조하면서 쑥차를 끓여 마시라고 했다.
 
한 번에 많이 끓여서 냉장고에 넣고 아침저녁으로 한 잔씩 마시라고, 쑥은 몸속에 쌓인 노폐물 해독작용을 할 뿐만 아니라 소화도 잘되고 생기도 나고 신진대사를 촉구한다고 설명까지 덧붙였다. 상냥한 설명에도 난감해지는 기분은 여전했다. 이미 쑥을 잊고 사는 제가 반세기 세월이기에.
 
베를린에 돌아와 가방에서 나온 쑥은 지하실의 냉장고로 들어갔고 잊혀졌다. 다른 음식물을 찾다가 손에 잡혔지만 엄두를 못 냈다. 고마운 마음을 기억하며 시간을 내서 쑥차를 만들어야지 생각만 하고는 다시 잊었다. 온갖 맛있는 차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유독 경험도 없는 쑥차를 마셔야하나 싶기도 했다.
 
보슬비가 그치지 않던 어느 날 마음을 다져 먹고 쑥차를 끓였다. 큰솥에 마른 쑥 을 넣고 물을 충분하게 붓고 끓였다. 쑥 향기가 온 집안을 채웠고 고향의 추억을 불러왔다. 봄이면 어린 새 쑥을 뜯어와 된장국을 끓였다. 봄비가 내린 후에 새싹들이 돋아나는 잎들을 뜯어다가 쑥 버무리를 해서 먹었다.
 
여름이 시작되고 쑥이 짙푸른 빛을 내며 약이 오르면 어머니는 살짝 데친 쑥을 쌀가루와 같이 버무려서 밥솥 안에 올렸다. 밥알이 붙은 쑥떡을 먹던 생각을 하면 어린 날의 추억과 더불어 유년기의 행복이 뇌리 속에서 감칠 맛나게 살아난다. 그리고는 뜨겁고 씁쓰름한 쑥차를 마시며 옛이야기를 즐겼다.
 
독일에서 쑥을 이용하는 모습은 어떨까? 주부들은 야생약초로 알려진 쑥을 노루나 산돼지고기를 오븐에 넣고 구울 때 중간 중간에 삽입하여 쑥 향으로 역한 야생동물의 냄새를 중화시킨다. 쑥 성분이 고기에 스며들어 맛이 더 좋아진다. 약초 책에 쑥차를 마실 때 설탕이나 꿀을 넣지 말라고 한다. 쑥의 중요한 성분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향기와 맛이 덜한 이곳의 쑥은 본산지가 남유럽인데 중세기에 유럽을 방랑한 수사들에 의해 중부유럽으로 옮겨졌다. 수사들은 쑥의 성분 중에 함유되어있는 환각제의 효력도 즐겼다고 전한다. 남독에 사는 친구가 쑥의 효험과 피부외상치료제로 쓸 수 있는 제조법을 알려주었다. 크게 자란 쑥을 대강 잘라서 올리브기름에 담가 햇볕에 내놓으면 3일 후에 올리브기름이 쑥색으로 변한다. 이 기름은 알레기, 부종 등 피부외상에 쓴다고 했다. 쑥의 주요 효력은 소화기능 촉진과 피를 정화시켜주는 일이다.
 
한방에서는 마른 쑥으로 뜸을 뜬다. 우리는 약초를 부식으로 먹으며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전에는 음식이 약(藥食同原)”이라는 말이 있다. 된장을 풀어 넣고 끓인 쑥국이야말로 우리나라 고유의 건강식이다. 형편이 되는 집에서는 생굴까지 넣고 쑥국을 끓였다. 굴을 넣고 끓인 쑥국에서 젓가락으로 굴을 골라내어 먹고 상을 물리는데, “이게 쑥국이냐 굴국이냐?”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물었다. 어머니가 얘기해 준 일화다. 시아버지 입맛에 별미가 성에 안 찼던 모양이다.
 
동문회 모임 때마다 쑥떡을 해오는 착한 후배가 있다. 삼십여 명 동문들을 위해 정성을 들여 재래식으로 떡을 빚어온다. 이곳에서 채취한 싱싱한 새 쑥과 고국에서 온 말린 쑥을 섞고 찹쌀가루를 내어 쑥떡을 대량으로 만들어 온다. 이 정성이야 말로 미덕으로 동문회 만남을 뜻깊게 하고 우정을 돈독하게 하는 일이어서 칭송을 받고 있다.
 
신기하게도 독일생활에서 아직도 된장을 스스로 담아 먹는 분이 있다. 바이오 메주콩을 대량으로 사다가 메주를 뜨고는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매달기까지의 과정을 들으니, 지금은 사라진 초가집 서까래에 매달려서 온 집안에 냄새를 풍기며 발효하는 메주덩어리를 연상시켰다. 집집마다 장독대에서 된장 익는 냄새가 물씬거리는 시골마을의 이야기가 그리워진다.
 
지인의 말에 의하면 고국에는 콩소비량의 90%가 미국에서 수입되고 있다. 개량메주콩이 값도 싸고 GMO(유전자조작) 콩으로 한국인의 식생활까지 변하고 있다고 웃었다. 된장도 메주도 공장에서 생산되고 쑥국도 서서히 잊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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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 (redaktion@kyoposhinmun.d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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