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미국이야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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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07월22일 00시00분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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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야기-(5)
황만섭
 
영국과 프랑스는 지금의 미국 땅이 있다는 걸 모르고 수십 년 동안 캐나다 동토만 돌았다. 그 사이에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재빠르게 남아메리카 땅을 나누어가졌고, 스페인은 서서히 베네수엘라와 멕시코를 거쳐 그랜드 캐니언의 콜로라도 강 근처까지 위쪽으로 식민지를 확장하면서 올라왔다. 영국과 프랑스는 나중에야 지금의 미국 땅 위치를 알아차리고 급히 뛰어들었지만, 나폴레옹은 유럽의 패권에 몰두하다가 새로운 이 땅에 신경을 쓸 시간이 없어 루이지애나(우리나라 10배 크기) 땅을 돈 몇 푼 받고 미국에 팔아 넘겼다.
 
버지니아에서 시작한 미국은 오하이오 평원을 거쳐 미시시피강을 건넜고, 계속해서 루이지에나 땅을 사들인 다음, 태평양이 나올 때까지 국토를 넓혀갔다. 그 뒤에 텍사스 합병과 멕시코할양을 통해 스페인으로부터 땅을 매입했다. 거기엔 강압도 내재해 있었다. 1868년 미국은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들였고, 1959년에는 군대를 앞세워 하와이를 식민지로 만들어 50번째의 미국 주에 끼워 넣었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처음으로 시작한 뉴암스텔담은 숫자가 많았던 영국출신들이 뉴욕으로 고쳐 부르면서 오늘날의 뉴욕으로 불리게 된다.
14921012일 콜럼버스는 포르투갈의 리스본 항을 떠난 지 70일 만에 아메리카에 첫발을 디뎠다. 그가 도착한 곳은 오늘날엔 바하마라 불린다. 그는 이 땅을 산살바도르라는 이름을 붙였고, 그 땅이 인도의 한 부분일거라고 믿었던 그는 서인도제도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며, 원주민들에게는 인도를 의식해 인디언이라고 불렀다. 아마 빙하기 때 러시아와 알라스카가 붙어있을 때 그 땅을 걸어서 들어오게 되었는지(?) 남북아메리카에는 이미 수만 년 전부터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콜럼버스는 이 인디언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약탈하면서 새로운 땅의 주인행세를 하기 시작했고,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온 동네에 나팔을 불어댔다. 1451년에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태어난 콜럼버스는 선원생활을 하다가 일찌감치 포르투갈의 시민이 되어 리스본에서 동생과 함께 지도가게를 하면서 틈틈이 천문, 지리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서쪽으로 계속 가면은 인도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인도에 가고 싶었던 콜럼버스는 자기를 도와줄 후원자를 찾았다. 제일먼저 포르투갈 왕에게 제의를 해보았지만 거절을 당한 그는 새로운 후원자를 찾아 스페인으로 넘어갔다,
 
당시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공주는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왕자와 결혼을 한 후, 두 나라를 합쳐 스페인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700년간 그들을 지배했던 이슬람 세력을 몰아낼 정도로 국력이 신장되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사벨 여왕은 콜럼버스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후원을 약속했다. 조건은 신대륙으로부터 생기는 모든 이익의 4분의 1를 이사벨 여왕이 갖고, 콜럼버스는 그 이익의 8분의 1일과 새로운 땅의 통치권을 갖기로 하는 내용이었다.
 
훗날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스페인을 저주했다.
새 땅을 알게 된 스페인은 포르투갈이 개입할 것을 염려해 알렉산드로 6세 교황에게 중재안을 부탁했고, 교황은 아프리카는 포르투갈이 갖고, 남아메리카는 스페인이 갖는다는 중재안 만들어 넘겨주었다. 바다 한가운데에 경계선을 그어 구분했는데, 훗날 그 경계선이 조금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지금의 브라질 땅이 조금 걸치게 되었다. 그걸 핑계 삼아 포르투갈이 얼씨구나 좋다며 뛰어들어 챙긴 땅이 지금의 브라질이다.
 
역사는 이 조약을 토르데시아 조약이라고 부른다. 스페인은 남아메리카에 직업군인들을 보내 약탈정책을 썼고, 영국은 북아메리카에 사람들을 보내어 이민정책을 썼다. 1492년 이후 200년 동안에 약 5.000만 명의 인디언이 죽어나갔다. 이 집단살육은 코르테스라는 자가 저질렀던 만행이었고, 페루의 잉카문명은 피사로라는 인간에 의해 무자비하게 망가졌다.
 
버지니아(처녀)는 엘리자베스 여왕 1(1533~1603, 헨리 8세와 앤 불린 사이에 태어난 딸)를 기념하기 위해서 생긴 이름이고, 제임스 타운은 제임스 1세를 기념하기 위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인디언 처녀 포카 혼타스는 뒷날 존 롤프의 아내가 되어 영국에서 살다가 죽은 첫 인디언 처녀가 되었다.
 
20명의 흑인노예가 네델란드 배에 실려 최초로 미국의 담배농장노예로 끌려온 것은 1619년의 일이었고, 그보다 앞서 1441년에, 12명의 흑인노예를 포르투갈로 실어온 것이 인류 최초로 시작된 흑인노예의 역사다.
 
필그림(Pilgrim)은 헨리 8세가 만든 성공회를 반대하는 종교반체제다. 헨리 8세의 억압과 살육을 피해 청교도들은 비교적 입주가 쉽고 살기가 편한 암스테르담으로 몰려들었고, 아들 손자 때를 거치는 세월 속에 차차 모국어(영어)를 잊어가거나 서툰 영어실력을 보고 걱정하기 시작했으며, 점차적으로 네덜란드인이 되어가는 것을 염려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녀들을 영국으로 유학을 보낼까 궁리하다가, 새로운 땅 미국이민을 선택하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암스텔담에서 온 청교도들로 영국에서 온 청교도들과 미국에서 다시 만나 프런티어 정신을 발휘해 오늘의 미국을 만들었다. 지금도 그 정신이 미국사회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미국의 동북부는 거칠고 돌투성이라서 공업이나 고기잡이(고래) 업과 제염업이 발달했고, 동남부의 버지니아 지방은 비옥한 옥토이어서 목화나 담배 등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업이 발달했으며 많은 노예들을 필요로 했다. 처음에는 새로 생긴 미국에 물건을 많이 팔면서 재미를 보던 영국은 시간이 지나면서 반대로 미국에서 영국으로 들어오는 물건이 더 많아졌으며, 설상가상으로 운반하는 배들도 네덜란드 배 4척에 영국 배는 겨우 1척이 실어 나르는 열악한 상태로 변했다.
 
그러자 영국의 독재자 크롬웰은 부랴부랴 항해조례를 발표해, ‘미국에 들어가는 모든 배들은 영국 배들만이 가능하다는 법령을 발표 했고, 그 일로 영국과 네덜란드는 전쟁을 해야만 했었다. 전쟁은 영국의 승리로 끝났고, 네덜란드의 전성기도 그 전쟁과 함께 끝나고 말았다.
 
다음으로 캐나다에 있던 프랑스계가 밀고 내려오자, 프랑스와 전쟁이 불가피해졌고, 그 전쟁 역시 영국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이에 기고만장한 영국은 미국에 설탕관세, 미국식민지 유지비, 군대주둔 비, 인디언 문제 관리비 등을 요구하게 되었고, 미국은 관세를 피해 밀수업자 헨콕을 통해 편한 샛길을 통해 물건들을 들여오기 시작했다. 거기에다가 미국의 여러 주들은 영국 상품의 미국 내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이제 영국과 미국은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두 나라 사이엔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참조 : 먼 나라 이웃나라,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사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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