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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01월22일 22시59분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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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을 이해하자(86) -독일의 역사(14)- 제 1차 세계대전①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의 세르비아에 대한 선전 포고로 시작되었다. 8월 1일에 이르면서 독일도 러시아에 선전 포고를 벌였으나, 3년 후 러시아에서는 혁명으로 군주제가 붕괴되어 전쟁을 포기했다. 이후 독일이 잇따라 잠수함을 이용한 선박의 무차별 공격으로 미국의 상선들을 침몰시키자, 미국이 참전하였다. 마침내 1918년 독일에서 킬 군항의 해군들의 폭동으로 인하여 빌헬름 2세는 퇴위하였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11월 11일, 연합국과 독일 간의 휴전이 성립됨으로써 전쟁은 끝났다.

이 전쟁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의 주요 연합국과 독일, 오스트리아, 불가리아, 오스만 제국등의 동맹국이 양 진영의 중심이 되어 싸웠으며 약 900만 명이 전사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엔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제안으로 국제 연맹이 설립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배경

 

-경제적 배경

1880년대 초반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국가 간의 산업·상업 반목 관계에 중점을 두고 있다. 마침내 1914년에 이르러 새로운 강대국으로 떠오른 독일 제국은 러시아를 포함한 전 유럽에 대해 적대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당시의 독일은 영국의 경제를 따라 잡아 세계의 경제를 주도하게 되었고, 조선업 역시 다른 나라들을 훨씬 앞서기 시작했다.

본래 프랑스는 독일과 함께 경제를 이끌어나가고자 하는 경쟁자로 양국은 모로코에서의 광산 자원과 무역 기회를 두고 대립하기도 했었지만, 프랑스의 풍부한 철광 산지인 로렌을 독일에게 빼앗기자 독일의 산업만이 크게 성장하게 된 것이다. 또한, 오스트리아는 이스탄불과 오스만 제국에 영토 야욕을 가지고 있었고, 독일은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할 계획이어서 이 지역을 일찌감치 탐내 왔던 러시아와 충돌이 불가피했다.

철도 부설도 문제가 되었는데, 이는 보스포러스에서 티그리스 강의 바그다드까지 이루는 노선으로, 이것은 다시 바그다드에서 페르시아 만으로 이어지고 있어 인도에까지 가는 단축 노선을 가능케 하였다.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의 은행가들과 공동 자본 투자로서 실시하려 하였으나 양국 간 각각의 이해 관계에는 맞지 않아 거절당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604 Km 철도선 부설을 강행하여 국제적 반목을 일으키게 된다.

 

-정치적 배경

제1차 세계 대전의 정치적 원인으로 가장 뚜렷이 드러나는 것은 바로 민족주의였다. 민족주의는 프랑스 혁명에서부터 자리 잡았으나 점점 여러 가지 위험한 형태로 나타났다. 그것은 대세르비아주의, 프랑스의 독일에 대한 복수심, 독일의 범게르만주의였다.

오스트리아가 1908년에 보스니아를 병합하자 대세르비아 계획은 합스부르크 가문에 대항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리하여 오스트리아 영내의 슬라브족을 선동하여 세르비아로 뭉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결국 이중 왕국에 반대하는 음모가 일어나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 사건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보스니아를 방문 중이었던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이 때 가브릴로 프린치프에 의하여 살해된다. 범슬라브주의는 열렬한 민족주의자들의 감상적인 희망이며 러시아 정부의 공식적인 정책이었다. 이 중에서 러시아는 가장 강력한 슬라브 국가로 발칸의 여러 민족의 희망이 되었고, 프랑스의 보복 운동은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이후 그 전쟁의 패배를 보복하려는 데서 비롯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프랑스인 절대 다수의 의견은 아니었으며 사회주의자와 자유주의자의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당시 프란츠 요제프 1세 치하의 오스트리아는 잡다한 인종 집단 간에 점증일로에 있는 민족주의 운동의 압력에 직면하여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방대한 제국의 판도를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5,000만 국민의 반도 안 되는 소수, 즉 독일어를 사용하는 오스트리아인과 헝가리어를 사용하는 헝가리인만이 지배 민족으로서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그 밖에 840만의 체코인과 슬로바키아인, 500만의 폴란드인, 400만의 루마니아인, 550만의 세르비아인과 크로아티아인, 77만의 이탈리아인이 영토 내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피지배 계층에 속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 남부 발칸 지역에 분포한 슬라브족이 가장 강력한 발언을 했고 조직이 잘 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웃에 위치한 세르비아는 이들 슬라브인에게는 자기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옹호자이며 모범이었다. 오스트리아군 총참모부는 세르비아와의 전쟁은 피할수 있다고 보게 되었고 이 이웃 왕국을 침략해도도 될 구실만이 생기길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이 사라예보 사건이 그런 구실을 만들어 주었다.

 

- 외교적 배경

오스트리아도, 세르비아도 그 동맹국들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외교적인 위기를 전쟁으로 몰고 갈 엄두는 못 냈을 것이다. 세르비아에 대한 지원은 니콜라이 2세가 통치하는 러시아에서 왔다.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사이에서 분할한 폴란드, 우크라이나 영토를 누가 더 많이 자국의 세력권 안에 넣느냐 하는 문제로 오스트리아와의 오랜 경쟁 관계에 있던 러시아는 발칸 반도에서도 영토를 넓히려 하고 있었다. 또한, 흑해와 에게 해를 잇는 중요한 수로인 다르다넬스 해협과 함께 전략적 요충지인 반도를 직접 통치하거나 아니면 자국의 영향권 안에 두고 싶어 했다.

러시아는 1908년 오스트리아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병합했을 때도 맹렬히 반대했다. 그러나 러일 전쟁의 참패로 군사력이 약화된 터라 개입은 하지 못했었다.

세르비아의 편을 들어줌으로써 러시아는 전략적인 이득 추구, 범슬라브 운동에 대한 동정, 숙적을 골탕 먹이고 싶은 욕망의 충족이라는 세 가지 목적을 동시에 도모할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는 이미 독일의 빌헬름 2세로부터 비슷한 지원을 다짐받고 있었다. 독일은 러시아와 같이 동맹국 지원에 나선 동기가 단순치 않았다. 유럽의 통치자로서 자국의 무력에 대해 빌헬름 2세만큼 큰소리를 치는 자는 없었다.

그는 독일이 완전히 지배하는 중부 유럽을 꿈꾸고 있었다. 독일이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느끼는 국제적인 인정을 하루 빨리 받아내고 싶은 나머지, 그는 필요하다면 "외국에서의 자국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칼을 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곤 했다. 당시,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고 있었다.

인구는 25%, 자본력은 50%, 국민 소득은 100% 늘어났다. 강철 생산량은 영국의 3배, 프랑스나 러시아의 4배가 되었다. 민족적 자신감이 팽배해진 독일은 영국을 넘보고 있었다.

1870년, 보불 전쟁에서 알자스와 로렌 지방을 빼앗긴 사실을 잊지 못하는 프랑스는 인구가 독일 인구의 3분의 2밖에 되지 않았으며, 공업력과 군사력에서 점점 낙후해 가고 있었다.

영국은 독일로부터 절박한 위협을 느끼고 있지는 않았다. 어쨌든 빌헬름 2세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고손이었으며 조지 5세의 사촌이었다. 양국의 많은 귀족은 공통된 전통과 혈연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은 독일이 해군력의 경쟁을 촉발하자 두려움을 갖고 대비하게 되었다. 사실, 영국은 섬나라여서 식량과 원자재 공급을 자국 선박의 해로 확보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해로 확보와 유지는 필수였다.



<866호 19면>

 
독일을 이해하자(89) -독일의 역사(17) - 바이마르공화국의 몰락
독일을 이해하자(91)- 독일의 역사(19) -제2차 세계 대전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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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 (redaktion@kyoposhinmun.d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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